사우디 아라비아는 중동에 위치해 있고 전제군주국이다. 서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국가이고 면적이 두 번째로 넓은 국가이다. 지리적으로 홍해와 페르시아만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고 사막과 산맥들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동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이며 평균나이가 가장 젊은 나라이다.
종교의 발생지이며 메카지역에서 7세기 초에 이슬람이 전파되었다
정통 칼리파조, 우마이야왕조, 압바스, 파티마 등 아랍 왕조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에서 나타났으며 무수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왕조들이 이곳에서 번성했다.
현재 사우디 아라비안은 1932년 이븐 사우드에 의해 건국이 되었고 4개의 지방들을 하나로 합친 국가이다. 국왕직이 세습되는 구조이고 극보수적인 와하비즘과 수니파가 주류 문화를 이루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통해서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으며 아랍인들에게 신성한 모스크를 2개나 보유하고 있다.
1938년 처음 사우디에서 석유가 발견됬고 이후 유전들이 지속 발견됐나 세계에서 석유를 가장 많이 생산해 내는 나라 2위로 떠올랐고 매장량 또한 거대하다.
이제 사우디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아라비아 반도에는 소수 부족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사막지대였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태어나고 주변 부족들을 신의 계시로 통일시키면서 이슬람 공동체를 만들었고 순교하고 나서 이슬람 문화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랍인들은 하자즈 지방에서 라쉬둔, 우마이야, 압바스, 파티마 왕조를 세웠고 20세기 초까지 각 지방에 토착 지배자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10세기 초반에는 이스마일(시아파)가 페르시아 만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으나 바레인의 반란인이었던 카르마티아가 메카를 침공했고 검은 돌을 훔쳐가면서 이슬람 세계의 공적으로 변해보리기도 했다. 이후 바레인 지방에서 우유니드 왕조를 재웠고 1253년에 망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홍해와 페르시아만까지 영토를 확장하면서 포르투갈인들의 침입을 막아냈다. 이후 400년동안 권력이 세거나 약해짐에 따라서 다양한 정책들을 내세웠고 일관적이지 못한 정책으로 인해서 분쟁을 심화시켰다. 이후 사우드 가문이 1744년 중앙 네지드 지방에서 나타났고 이슬람 극단주의 와하비즘의 창시자인 와하브와 힘을 합쳤는데 18세기에 맺어진 동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팽창정책과 현재 엄격한 전제군주정의 토대가 되었다.
1803년 메카를 공격하여 되찾고 사우디아라비아 지방 대부분을 장악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에 의해서 1818년에 명망하고 주변을 돌아다니다 네지드 지방에 1824년 사우디 2 왕국을 건국했으나 오스만으로 인해서 다시 나라를 내주고 쿠웨이트로 피난 갔다.
20세기 초에도 오스만은 아라비아 반도를 통치했고 점점 통치를 벗어난 독립을 원하는 움직임이 강해졌고 이븐 사우드라는 불리는 인물이 사우드 가문을 네지드지역으로 다시 귀환시켰다. 그리고 사우디 3왕국을 세웠고 초반에 동맹을 맺었던 와하비즘과 그 영향을 받았던 이크완의 지지를 받고 1913년에 오스만으로부터 알 아샤지역을 강탈했다.
1916년 영국의 지원을 받아서 오스만 제국에 투쟁을 벌였으며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하자 아라비아에서 패퇴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븐 사우드는 바란에 참여하지 않았고 알 라시드 가문과 투쟁을 실시했고 네지드의 술탄직을 1921년에 얻어내고 이크완의 지지를 등에 없고 주변 왕국을 점령했다. 이크완은 성장된 힘에 의해서 점점 영국령을 공격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사우디는 그것을 반대를 했다. 영국이 얼마나 센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격주의자들과 이크완들은 이븐 사우드의 정책에 실망하여 등을 돌렸으나 1929년 사빌라 전투에서 져서 모든 지도자들이 처형당했고 1932년 9월 23일 남은 왕국들이 통합되어 사우디아라비의 왕국이 공식적으로 성립되었다.
통합하긴 했으나 벌어먹고 살 자원이 없었고 유전이 1938년에 몇몇지역에서 발견되었고 미국 석유회사 주도하에 석유가 생성되었고 이것이 사우디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으며 위상이 엄청 높아졌다.
경제 수준이 성장함에 따라서 문화도 빠르게 발전했고 외국인들이 사우디로 들어오면서 타지인에 대한 포비아문화가 형성되었고 경제기반을 다져줄 수 있는 정책들이 실패하고 자금이 낭비되면서 국가 부채가 늘어났다.
1973년에 유명한 욤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한 서방국가들이 싫어 오일 대란을 일으켰고 세계적인 경제가 휘청거리는 일이 있었다. 이후 국왕이 암살되고 칼리드가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1976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석유 생산국이 되었고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경험하면서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했고 이 시점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2차례 메카를 점령하고 사우디는 격분하여 해당인원들을 처리하면서 10일 이후에 되찾았다.
극단주의자들이 처형되고 나서 정보는 이슬람 율법을 더 강화했고 율법학자에게 권한을 더 주면서 극단주의단체가 탄생하는것을 막았다.
그러나 사우디정부가 사담 후세인을 지원하면서 일이 점점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미국이 참전했다.
이때 서방과의 교류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극단적인 이슬람계와 샤리아들을 반발을 했고 사우디 국적의 테러리스트들이 국내외 적으로 많이 등장했고 오사마 빈 라덴도 사우디 국민이었다. 2000년에 아덴만에서 미국 군함을 공격하고 2001년 9월 11일에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 자폭테러를 하는 등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들이 연이어서 발생했다.
나라는 부유했지만 왕족을 위한 돈이였을뿐 시민들은 경제난에 허덕였다. 그러던 중 2011년 아랍의 봄이 불기 시작하면서 민중봉기가 차례대로 각 나라별로 발생했으며 이것을 두려워한 사우디는 막대한 돈을 풀면서 진정시키기 시작했고 새로운 집과 직업들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면서 시민들의 불만을 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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