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은 공화국이고 서아시아의 지중해 연안에 있다. 특이하게 다종교 국가이며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국경으로 접하고 있어 많은 분쟁과 전쟁이 일어났던 지역이며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50대 50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술과 고기가 자유로운 지역도 있다.
고고학자들이 바블로스에서 7,000년 전 지중해 연안에 살았던 신석기와 칼롤리트어민 공동체의 증거인 석회암 바닥이 부서진 선사시대 오두막의 잔해들과 원시무기들, 매장 항아리들을 발견했다.
가나안 사람들은 오늘날 이스라엘,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 등과 더불어 레바논지역에 거주하던 초기 주민이다.
셈족은 기원전 2000년 이전인 청동기 시대 초기에 가나안에 나타난것으로 추정된다.
가나안 사람들은 원시 고대어(원시 시나이 문자, 우가리트 문자)같은 30자 알파벳을 줄인 가장 오래된 24자 알파벳을 만든 사람들이고 이후 페니키아 문자로 발전되어 지중해 지역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점차 가나안 도시들을 정보하여 솔로몬의 통치가 끝날 무렵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동화되었다고 한다.
레바논의 해안은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라고 칭한 셈족문화의 해안 무역도시이며 본거지이다. 그들의 해양문화는 기원전 2700년에서 450년까지 번성했고 고대 유적, 정교한 예술로 문명화된 국가입니다.
많은 국가들과 문화가 모인 세계적인 중심지였고 문맹의 발생지다
알렉산더 대왕은 7개월동안 원정을 다니면서 정복을 했고 기원전 332년에 티레를 정복했다. 이후 셀레우코스 제국에게 함락되고 1세기에 로마제국에 의해 정복되고 비잔티움 제국은 그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로마제국이 되었다.
로마는 기원전 64년에 레바논을 점령하고 나서 티루스에 해군기지가 설치되었고 서기 300년대에는 기독교가 널리 퍼졌다. 일부지역은 동로마제국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슬람 종교의 창시자 였던 무함마드의 죽음으로 이슬람교가 널리 퍼졌음 레바논도 중세시대에 아랍인들이 정복당했다. 이슬람과 아랍어가 공식적으로 우세했지만 시민들이 사용하는 기독교와 시리아어를 개종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마론파(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고수했다. 아랍은 레바논 지역에서 영향력은 7세기 무렵 다마스쿠스에 우마이야 수도가 세워지면서 강해졌다 중세시대에 레바논은 십자군 전쟁에 크게 관여했고, 예루살렘을 진격하는 주요 길목에 있는 주요 요충지였고 남쪽 절반은 예루살렘 왕국, 북쪽 절반은 트리폴리 백작령이 통치했다.
이슬람교도의 통치는 13세기 후반 이집트 맘루크 술탄에 의해 통치되었고 이후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 동부에 대한 이점을 차지하려 통치했습니다.
레바논 해안은 마치 베네치아 및 다른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과 접촉 및 무역을 위해 중요해 졌고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19세기에 들어서자 오스만은 레바논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분쟁이 일어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살해됐고 프랑스가 개입하여 기독교인들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프랑스 통치령이 됐고 시리아와 통합되다가 1941년 영국이 나치를 견제하기 위해서 레바논과 시리아에 군대를 파견했고 레바논에서 전투가 끝난후에 샤를 드골 장군은 독립을 인정하기고 결정하여 1941년 11월 26일 레바논은 독립이 되었다.
1943년 선거를 실시하고 대통령이 당선됬지만 프랑스인들에 의해서 새 정부 형성의 걸림돌이 됐다가 국제적인 압력으로 인해서 그해 11월 22일 석방하고 레바논의 독립이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졌다.
2차 세계대전까지 연합군은 지역을 통제했고 프랑스 군이 1946년 철수햇고 1943년의 불문율 국가조약으로 레바논의 대통령은 기독교인이, 총리는 이슬람교도가 되어야 했다.
레바논은 복잡한 종파(宗派)의 대립을 배경으로 독특한 종교연합국가를 형성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중립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철저한 자유화 정책을 추진하여 아랍 여러 나라의 물자와 정보 제공의 중간자적 역할로 독자적인 번영을 유지했다.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아랍연합군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했지만 깔끔히 패하고 휴전협정을 실시했고, 10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전쟁으로 인해 레바논에 거주하게 됨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레바논에서 활동했고 무장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다. 기독교와 무슬림의 수가 유사하게 되어 기독교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으며 정세불안이 점점 악화되었다.
1975년 2월에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은 기독교인들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을지원하는 무슬림과 내전이 일어났으며 1982년 6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여 PLO소탕을 위해 베일루트를 완전히 포위하고 맹폭격을 가한 사건도 있었다.
미국의 중재로 인해 PLO무장세력은 해체되었고 아랍 여러나라로 찢어졌다. 이후에 기독교 민병에 의한 난민 학살사건, 내전, 폭탄테러사건등 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결국 1984년 1월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철수하라고 주장하는 무슬림 세력과 기독교 대통령을 따르는 정부군 기독교 민병대의 내전이 시작됐고 미 해군은 무슬림 지역에 함포사격을 가했다. 그럼에도 이슬람 세력이 베이루트를 점령하고 시리아 주도로 정전되었다.
이후 내전이 발발하여 15년간 실시되었고 25만명이 사망하고 2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근현대에 들어서도 분쟁과 내전, 종교문제로 발생하는 사항에 대해서 다투고 있다.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반반인 상태에서 프랑스에 의해 대통령과 총리가 종교가 다른 시점에 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전에도 분명 종교로 인한 문제가 있었지만 많은 침략을 당하고 강대국에 의한 제국주의 시대에 많은 피해를 받았던 중동은 분쟁으로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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